문화향기·김강  바카라사이트 굿모닝, 그 아름다운 마무리
영어영문학과
김강 교수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였던 금아 피천득의 '인연'은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순수한 서정을 담은 글 중에서 단연 백미로 꼽힌다. 운명적 만남의 각별한 의미를 풀어준다는 측면에서는 철학적 명상록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슴 떨리는 새로운 만남을 다룬 이야기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서구의 시각에서 으뜸이라면, 금아의 '인연'은 동양적 여백과 우수에 대한 정서가 더욱 물씬하다.

이야기는 춘천에 있는 성심학교에 대한 반추에서 시작된다. 그는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로 동경에 유학하여 사회사업가였던 미우라 선생의 집에 잠시 유숙한다. 그 집에는 선생 내외분과 딸이 살았다. 금아를 오빠처럼 따르던 그 집 외동딸은 아침에 태어났다는 뜻으로 이름이 '아사코'였고, 뜰에 핀 '스위트피'처럼 여리고 귀여웠다.

당시 성심여학원 소학교 일학년이었던 아사코와 금아의 만남은 십 삼사 년 뒤 다시 이어진다. 성심여학교 영문과 3학년이 된 아사코는 '목련꽃'같이 성숙한 '영양'이 되었고, '쉘부르의 우산'과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을 뒤로하고 다시 한번 이별한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코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금아는 추억의 필름처럼 그녀를 새기었다.

세 번째 만남은 금아가 1954년 처음 미국에 가는 길에 잠시 이뤄졌다. 아사코는 일본 패망 후 동경에 진주한 미군 장교의 부인이 되었다. 여학교 졸업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던 그녀는 거기서 일본인 2세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의 안내로 방문한 아사코의 집은 어릴 적 그녀가 금아에게 이담에 같이 살자고 속삭였던 뾰족한 지붕과 뾰족한 창문이 달린 집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아사코는 '백합'처럼 시들어가는 모습이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십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젊은 나이가 분명한데도 현실적 누추함에 가려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고, 남편은 그저 승리에 만취된 진주군의 상징이었다.

금아는 세 번째 만남을 다음처럼 술회한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이 얼마나 가슴 저리는 서러운 인연인가. 금아가 그리도 애처로이 가슴에 간직했던 아사코를 향한 반가움은 원망으로 변했고, 오히려 세월의 흐름과 인정의 변화를 각인시켜준 가슴 아픈 해후가 되었다. 차라리 애초에 만나지 않았던 게 더 좋았을 인연이었다.

1985년 가수 나미가 불러 히트한 '슬픈 인연'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별에 대한 노래다. 원래 일본 가수가 불렀다는 이 곡은 나미의 애절한 창법을 통해 우리의 '18번'으로 부활했다.

"멀어져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아직도 이 순간을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 아 다시 올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 올거야." 이 무슨 질긴 인연인가. 이별과 재회는 또 다른 만남으로 연장되지만 흐르는 세월 속에 또다시 많은 눈물을 흘릴 것을 슬퍼한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과는 격이 다르겠지만,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인연은 그저 비탄과 고뇌로 점철된 상처뿐인 훈장이 아닐까.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인연 리스트에서 압도적인 최상이다. 극작가는 그들의 사랑이 운명적으로 엇갈렸다는 star-crossed lover, 비운의 연인이라는 표현까지 만들었다. 상대를 택한 것이 비록 본인이었을망정, 집안끼리 앙숙이었기에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만남이 죽음에 이르는 통로가 된 까닭에 슬픔보다 훨씬 더한 아픔이다. 로미오가 "가장 분별 있는 광기"라고 고백한 사랑은 그 흔한 변심이 아닌 운명에 패배당한다.

엊그제 상춘재에서 '토리 아빠'들이 조우했다. 때마침 매화와 산수유도 만개했다. 특별한 인연이다.

이처럼 다양한 만남 중에서 정말 아름다운 인연이란 어떤 것일까. '회자정리'라는 말처럼 우리는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서로의 이익이 갈등하면, 인연도 악연이 되는 것일까. 셰익스피어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희극에서 시작도 좋아야겠지만 마지막은 더 귀중하다고 충고한다. 죽음이 출생보다 예리한 것도 어찌 보면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마무리는 특별하다. 서로를 바르게 보내는 기술과 지혜를 배워야 한다. 사람이 먼저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