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방송학과
조경완 교수
정치는 건달의 영역이다. 여기서 건달이라 함은 물론 주먹패들을 말하는게 아니다. 특별한 직업은 없지만 세상 대소사에 관심을 갖고 힘없이 곤란을 겪는 이들을 돕는 걸 즐겨하는 무리다. 또 공동체 안에 행패를 부리는 자나 천륜을 어기는 패악질을 하는 자, 지나치게 제 욕심만을 부리는 자를 규탄하거나 응징하는 역할을 기꺼이 맡는 무리다. 재난이 닥치거나 울력이 필요한 일이 벌어지면 몸소 나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무리, 돈이 드는 일에는 어떻게든 변통을 내어 어려움을 넘기게 해주는 무리다. 그런 건달들이 정치를 할 적에 세상은 잘 돌아갔다.
그들에겐 누가 문서로 써놓지 않았지만 룰이 있다. 치사한 짓은 안한다는 것, 돈보다는 체면이 중요하다는 것. 명예를 손상당하면 참지 않는다는 것, 적이지만 인간적으로는 돕고 산다는 것 등이다. 건달들의 법도다.
판서집안 막내아들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도 엄밀히 말하면 건달이다. 와세다 정치과를 나와 귀국하여 몇 년 교편을 잡았지만 그게 직업이라 할 순 없다. 상해 임정에 투신했다가 해방 후 제헌의회 국회의장을 지냈다. 다른 독립투사들에 비해 조명이 덜 됐지만 항일무장투쟁 동지들과 손가락을 잘라 피로 맹세한 그의 독립운동 스토리는 파란만장하다. 1956년 야당인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그가 호남선 열차 안에서 급서하자 온국민은 통곡했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손인호가 부른 ‘비내리는 호남선’은 국민가요가 됐다.
건달 정치인으로 유석(維石) 조병옥(趙炳玉)을 빼놓을 수 없다. 평양 숭실학교를 나와 미 컬럼비아바카라사이트 벳위즈에 유학하고 귀국 후 신간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미 군정청 경무부장을 지냈고 유엔총회에 대표로 참석했으며 신익희 사후 민주당을 이끌었다. 터프가이의 풍모인 그는 인정이 많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천상 건달이었다. 아들 조순형은 아버지에 한참 못미친다.
4대 대통령이었던 해위(海葦) 윤보선(尹潽善)도 건달 정치인의 계보라 할 수 있다. 에딘버러대 고고학과를 나온 그윽한 학벌에 서울시장과 상공부장관을 지냈다. 4.19로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5.16으로 쫒겨났다가 1963년 대선에서 박정희에게 패했다.
좀더 가까이로는 박순천 유진산 이철승 김영삼 김상현 정대철 등이 이른바 건달이라 불러줄 수 있는 정치인들일 것이다. 명분을 중시하고 세력을 모을 줄 알며 반대파를 설득하는 매력을 가진 인물들인 것이다. 이때까지만도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고 기업은 경제에 매진 했으며 과학자들은 밤새워 연구를 했고 선생들은 학생을 가르쳤다. 관료는 박봉을 마다 않고 자부심을 갖고 일했으며 검사는 나쁜 놈들 잡고 판사는 공정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정치판에 고시출신들이 등판하면서 정치는 악다구니 싸움판이 되어버렸다. 사회가 복잡해지니 언필칭 전문가 집단이 필요했겠다 치자. 그러나 검사 판사 출신들이 지나치게 정치판에 몰려들었다. 나중에는 바카라사이트 벳위즈교수란 사람들도 나타나고 의사, 기자들도 나서더니 시민운동가란 사람들도 정치를 하겠다고 나타났다. 세상 돌아가는 걸 탓 할 순 없으되 이들은 세상을 오히려 피곤하게 만드는 정치를 한다는 점이 못견딜 일이다.
대표적인 폐단이 입법부 내에서의 싸움을 사법부로 가져간다는 점이다. 걸핏하면 “사법조치를 검토하겠다”며 상대에게 으름짱을 논다. 서류봉투에 무슨 무슨 고발장입네 떡하니 써서 검찰청 민원실에 접수시키는 정치인들을 보는건 숱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서는 수사가 편파적이네 재판이 지지부진하네 하며 또 거품을 문다. 정치가 품위나 유머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여유마저 없는 천박함과 상스러움으로 뒤덮이는 것이다.
고시에 합격한 두뇌들이 구체적 정책에 밝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정치가가 되려는 사람은 정치가의 천성이 있어야 한다. 세상의 밝고 어두운 면을 감수성 예민한 청년기에 몸소 경험하고 사랑과 우정에 뜨거운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 정치를 해야한다. 과거 멋쟁이 건달들까지는 아니더라도 배고픈 이웃에게 내 밥을 내밀어 주는 인정, 받는 이가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기술을 체득한 사람이 정치를 해야한다. 입신양명하려고, 권력 잡아 한풀이 하려고, 한탕 크게 벌여 증손자까지 잘먹고 잘살게 하려고 정치판에 들어오는 자들은 못 배겨나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법대로”를 외치는 옹졸한 정치인들이 아니라 법이 허용하더라도 도리에 맞지 않으면 몸소 삼가고, 법이 금하더라도 양심이 명령하면 몸소 행하는 건달 정치인들을 우리는 그리워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