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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치료학과
김은성 교수

필자가 전시회 관람을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정해진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주제별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주제에 맞는 조명과 소품, 작품들이 연신 감탄을 자아냈다. 물 흐르듯 공간을 옮겨가는 그 길목에 어느 순간부터 자꾸 마주치는 사람이 있었다. 전시를 보는 내내 많은 작품 뒤로 내 눈길을 끄는 한 분이었다. 나이는 그리 많지 않은 중년의 그 여성분은 허리띠에 각종 청소 도구를 매달고 양손에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어 쉴 새 없이 비질하고 걸레질했다. 관람자의 동선에 부딪히지 않게 잘 비켜 가면서 계단이며 바닥이며 어찌나 쓸고 닦으시던지 행여나 나의 움직임에 작은 먼지 하나 일으킬까 뒤돌아볼 정도였다. 눈에 보이는 오염이 없어 보였는데도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그분이 내겐 그날의 작품만큼이나 특별해 보였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관람하다 보니 왜 그리 열심히 비질을 해대셨는지 알 것도 같았다. 전시회 특성상 사막 모래가 펼쳐진 공간이 있었는데 관람객들이 그 장소를 지나올 때마다 신발에 묻혀 딸려온 작은 모래 입자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니 그 잔해들을 한데 모으려면 쉴새 없이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관람 내내 쾌적한 공간에서 한껏 작품에만 몰두하여 감상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문득 그분의 묵묵한 비질에 우린 얼마나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크건 작건 간에 나에게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한다 했어도 그것이 얼마만큼의 결과를 가져왔는지만 신경 쓰지 않았는지 하는 낯 뜨거운 자기반성도 함께 해 본다. 동시에 요즘엔 “~답게” 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졌다. 학생답게, 선생님답게, 남편답게, 엄마답게 등등…

혹시 나에게 주어진 일을 [부정](자신의 용납할 수 없는 생각이나 행동을 마치 그러한 것이 없었던 것처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 현실의 불쾌한 상황을 직면하지 않으려 하거나 불안 유발 자극을 지각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의 일종이다)하며 외면하진 않았는지, [합리화](용납되기 곤란한 충동이나 행동을 도덕적·합리적·논리적으로 그럴듯한 이유를 가져와 설명하는 것으로 비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자존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기만형 방어기제에 속한다)하며 어벌쩡 지나치진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자신의 역할과 의무에 맞는 행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그 일의 실패와 원인을 [투사](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과 같은 감정을 돌림으로써 부정할 수 있는 방어기제)와 같은 미성숙한 방어기제로 괜한 남의 탓으로 돌리진 않았는지도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는 뜻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하찮고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치부해 버리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비가 내리기 전 먹구름이 끼고, 열매를 맺기 전 꽃이 피는 것과 같은 자연의 이치와 같이 내가 일하는 팀 내에서 모두가 꺼리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는 것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하루가 멀다고 하게 속을 썩이는 것도, 이유를 알 수 없는 학생의 반항에 고민이 늘어가는 것도, 배우자와의 관계가 어느 순간 소원해진 것도 모두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때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감 있는 팀원답게, 자애로운 부모답게, 소통하는 선생님답게, 서로를 사랑하는 배우자답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조금은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게는 가정과 학교에서, 더 나아가서는 직장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국가에서 우리 모두에겐 주어진 역할과 의무가 있다. 요즘 텔레비전에서는 “국가대표답게” 선수의 역할을 너무도 충실히 하는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이 우리의 애국심을 한껏 높여주고 있고, 대통령 후보들은 “대통령 후보답게” 토론에 성실히 임하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일 중이다. 때로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이 막막하거나 묘수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단순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되뇌어 보자. “~답게”에 가장 적당하고 어울리는 생각과 행동이 무엇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