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영문학과
김강 교수
독자적 의지와 행동으로 조직이나 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리더들은 언젠가 이런 질문에 처할 것이다. "누가 내 뒤를 이을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후계자를 찾는 자는 모순된 생각에 무척 혼란스럽다. 그 하나는 모든 것을 가장 능력 있는 사람에게 물려준 후 자신은 지난 업적과 더불어 기념비적 존재로 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임종유품처럼 자신의 퇴장과 동시에 모든 것이 몰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는 그 누구도 자기보다 뛰어날 수 없다는 위대성과 유일성을 후계자에게 증명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생각은 나치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에게 절대적인 소망이었다. 그는 자살하기 전 형식적으로나마 후계자를 결정했지만, 제국의 야심을 이루기에는 너무 나약한 독일민족이, 마치 광기에 쌓인 로마의 네로처럼, 자신과 함께 멸망하는 상상을 했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은 이러한 상반된 심리를 매우 상세히 묘사한다. 중세영국의 군주로서 리어가 자신의 계승권을 성급하게 그리고 권위적으로 결정하는 과정을 그린다. 리어는 고네릴, 리건 그리고 코딜리어 세 딸에게 자신에 대한 사랑 혹은 절대적 복종을 확인하기 위해 거칠게 묻는다.
"내 딸들아, 너희 중에 누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지 말해다오" 탐욕스런 고네릴과 리건은 자신들의 사랑을 과장한다. 반면에 착하고 진실한 막내딸 코딜리어는 자식으로서 절반의 효성을 다하겠다는 자연의 법칙으로 응답한다. 무심한 딸에 격노한 리어왕은 코딜리어를 추방하고 국토를 양분하여 두 언니에게 하사한다.
아직은 세력이 등등한 그래서 그 힘에서 비롯된 오만함에 사로잡힌 지배자이자 왕국의 최고경영자로서 리어왕의 결정은 과연 미친 변덕일까?
리어왕은 유산문제를 오랫동안 미루어왔다. 나이는 이미 여든이 넘었다. 왕권을 넘기고 국가경영에 대한 근심과 노고를 뒤로한 채 인생의 황혼기를 즐기고 싶다. 후계자만 결정되면 더 이상 책임도 없다. 유유자적한 노후가 그를 반길 것이다. 한가로이 사냥을 나가고 수백명의 기사들과 어울려 흥겹게 지낼 일만 남았다. 상속자로부터 지위와 특권과 계속 주거할 수 있는 권한만 얻어내면 만사형통이다.
그러나 '계약'으로 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첨 게임'에서 당당히 승리한 두 딸이 단지 '말'로만 약속한 특권뿐이다. 보증도 없고 노후를 위한 재산증서도 없다. 후계자에게 왕권을 물려준 뒤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어떤 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 오직 상속자들의 말만 믿고 그들이 자신에게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는 기대로 왕권을 넘겨버렸다.
이런 식의 일 처리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특권을 유지하고 싶다면 더욱 든든한 안전장치를 해놓아야 한다. 리어왕처럼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고, 자신의 운명을 타인의 재량에 맡긴 사람은 환상에 빠진 격이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다.
충직한 조언자 켄트 백작이 그 사실을 일깨운다. "왕이시여, 정신 차리세요." 켄트는 고독하고 성마른 결정을 내리는 왕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금 리어가 누구의 손안에 자신의 안전과 권력을 자발적으로 건네주고 있는지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한 켄트 역시 파문을 당한다. 군주의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오늘날에도 빈번하다. 권력자는 자신의 결정이나 현명함이 의심받게 되면 상대를 무참히 파문한다. 그동안의 직무가 상대의 능력과는 상관없는 마치 자신이 베풀어 준 특혜인양 당연한 직분을 빼앗거나 힘든 외근이나 한직에 처분한다.
이런 상황이면 쓰레기통 주변에 우글대는 파리들처럼 아첨꾼만 들끓는다. '예스맨'과 리어왕의 두 딸인 셈이다. 그런 자들과 경쟁하고 싶지 않거나 '알랑거리는 기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순식간에 밀려난다. 권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누군가의 충언에도 쉽사리 귀를 열지 않는다.
마침내 리어왕의 권력은 소멸한다. 그간의 특권과 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뼈저리게 체험한다. 국토를 넘겨받은 두 딸은 남편들과 합세하여 그를 박대한다. 성급히 권력을 넘겨준 리어는 이리저리 떠밀리고, 결국 곁에 단 한 명의 광대마저 둘 수 없다.
간사한 아첨에 환멸을 느끼고, 폭풍우 몰아치는 황야를 비참하게 헤매면서 힘없는 저주를 퍼붓는다. 그제야 알게 된다. 현재를 잃은 후에야 과거의 풍요를 갈구한다.
셰익스피어는 세상이라는 무대를 통해 권력의 냉엄한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권력의 상승과 몰락은 운명의 여신에게 달려 있다. 행운과 불행이라는 두 바퀴 마차로 질주하는 것이다. 리어왕은 상실의 고통과 광기에 몰린 권력자의 몰락을 체계적이며 극적으로 제시한다. 과연 '권력의 종말'이 가능한 것인가? 인간의 역사가 존속하는 한 권력은 그림자처럼 뒤따를 것이다.
절대권력의 이양을 앞에 둔 요새 영입과 헤쳐모여, 탈당과 합당이 정치권을 뒤흔든다. 지난 역사를 '팽'하고 새판 짜는 형국이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정당의 이념이 실현되는 궁극의 장이라 외치면서도 정작 그들은 이미 패권에 취한 듯하다. 도둑 잡는 고양이가 도둑 쥐와 한패가 된 '묘서동처'의 혼돈이다. 서로의 노고를 위로할 세밑인데도 뒤틀린 글에 우리 속내를 털어본다.
셰익스피어 희극의 제목처럼, 항상 끝이 좋아야 다 좋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