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영문학과
김강 교수
그 말이 맞았다. 민중은 '개와 돼지'였다. 몇 년 전 국가 백년대계를 세우는 관청의 장수가 취중에 '신분제 도입'을 외치며 내뱉은 언표다. 분노하는 민심에 덩달아 교육계와 정치권도 처벌을 부르짖는 고함으로 들끓었고 파면 청원이 빗발쳤다. 하지만 두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 '디케'의 판결은 국민 대다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관리는 이후 복직에 이어 강등 수모를 감내하는 정도의 구원에 이른듯하다.
인간이 느닷없이 가축으로 변하고 사람 사는 온전한 세상을 더럽고 혼탁한 축사로 비유한 경우가 비단 어디 그뿐일까. 영국의 식민지 경찰관에서 소설가로 변모한 에릭 아서 블레어는 1945년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동물농장'을 발표한다. 시각적 감시와 제도적 통제가 일상인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를 마치 예언처럼 투시한 '1984'와 더불어 그의 문학적 트레이드마크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오웰은 당대의 사회를 개들의 호위를 받는 돼지들이 지배하는 탐욕과 무질서로 가득 찬 카오스 농장으로 풍자한다. 소수의 사람과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매너농장의 주인 존스가 대표적 인간이다. 스스로 정한 '일곱가지 계명'으로 동물들의 존재성을 규정하고 그들의 노동력을 교묘하게 착취한다. 예를 들면 우유는 송아지의 것이 아니라 존스의 것이고 어미 닭의 역할은 알을 다산하는 것이며 삼겹살이 두둑한 돼지가 착한 돼지라고 윽박지른다.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라는 전제주의 논리의 강제인 셈이다.
궁핍과 고난의 이유를 깨달은 동물들은 늙은 돼지 메이저의 지도로 인간에게 맞선 권리투쟁에 나선다. 혁명이다. 사람주인을 몰아내고 동물세상을 건설한다. 모든 동물의 자유와 행복이 새 왕국의 목표다. 리더 자리는 머리 좋은 돼지들에게 맡겨진다. 평등하고 보편적인 삶을 염원하는 이들과 달리 두마리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권력과 사익추구를 위해 대립한다. 나폴레옹은 결국 사나운 개들을 깡패처럼 동원해 정적을 제거한 후 '위대한 지도자 동무'이자 '모든 동물의 아버지'로 등극한다.
그러나 그의 치세는 독재로 치닫고 농장은 존스 때처럼 다시 암흑 속으로 추락한다. 충직한 일꾼 말 복서도 푼돈에 팔려 도살에 처한다. 농장은 이전보다 많은 수익을 거두지만 나폴레옹을 두목으로 받드는 돼지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곤궁하고 비참한 생활에 시달린다.
"네발은 좋고, 두발은 나쁘다!" 사람의 언어로 해석하자면 '동물은 좋고, 인간은 나쁘다' 쯤 되겠다. 동물들이 그들의 농장을 처음 세울 때 만든 혁명원칙이다. 새로 고친 일곱 계명도 모든 동물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인간처럼 살지 말 것을 요구한다. 원칙과 계명은 곧바로 변질된다. 사욕과 독점, 음모와 배신의 그림자가 의로운 혁명의 구호마냥 곳곳에서 출몰해 서로를 위협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얼마나 기막힌 반전인가. 돼지들이 농장동물을 부렸던 채찍을 들고 다닌다. 인간이 쓰던 라디오와 전화가 들어온다. 나폴레옹은 파이프를 피워대고 똘마니 돼지들은 사람의 옷을 입고 설친다. 인간과 카드놀이에 맥주잔을 건배하고 쌈박질에 난장판이다. 대체 여기가 동물농장인지 아니면 매너농장인지,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도저히 구별할 수가 없다.
오웰의 '동물농장'은 흔히 소비에트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역사적 인유이자 비판적 우화로 해석된다. 1917년 러시아 민중은 3월과 10월 두 차례 혁명을 일으켜 왕과 귀족의 피난처였던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렸다. 새 국가와 공정한 헌법, 자유와 평등을 꿈꾸었지만 마르크스 이론을 변조한 스탈린의 등장으로 또다른 감금 시대를 견디었다.
Korea Land Housing, 한국토지주택공사. 국민의 주거지 안정을 위해 세금 먹여 키운 공룡기업이다. 최근 신도시 투기의혹으로 '한국농지투기공사'라는 닉네임도 생겼다. 초범이 아닌 듯 솜씨가 기민하고 절묘하다. 우연이라는 수장의 태도는 점입가경이다. 이것이 한국판 뉴딜이던가. 덕분에 누구는 여전히 Lost House, 집 없는 신세. '치부'평천하의 욕구에 걸신들려 동지를 배반하고 기망한 나폴레옹 돼지 꼴이다.
민중의 생존권을 유린하는 국가제도의 끔찍한 부패를 목도한 오늘, 대체 촛불혁명의 호혜로 무장한 그분들이 입버릇처럼 되새기는 '공정'과 '적폐청산' 공약은 언제나 이뤄질까 감히 여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