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양학부
김명진 교수
함박눈이 내리는 서울역광장에서 노숙인에게 외투와 장갑을 벗어준 한 중년남자. 영하의 날씨에 커피 한잔 사달라는 노숙인의 부탁에 자신의 외투를 벗어 덮어주고 장갑과 현금 5만 원을 건네는 모습이 사진기자에게 우연히 포착되었다. 기자가 신분을 확인하려 뛰어 갔으나 그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20대 후반에 아무 연고도 없는 지구 반대편 오스트리아 에서 날아와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43년 동안 돌본 마리안느와 마가렛 간호사. 두 사람은 조건 없는 사랑으로 한센병 환자들과 그 자녀들을 보살폈다. 나이가 들자 이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편지 한 장 남겨놓고 40년 전 올 때 가져왔던 그 검은 가방 하나들고 훌쩍 떠났다.
아프리카 가봉에서 일생을 환자를 돌본 슈바이쳐 박사. 파리 소르본대에서 철학과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취리히 시내를 걷다가 프랑스령 가봉에서 어린이들이 의사가 없어 죽어간다는 뉴스를 신문 가판대에서 보고 의대에 편입해 6년 만에 의사가 됐고 가봉으로 건너갔다. 나와 상관없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고 보살폈다.
과연 리차드 도킨스의 주장처럼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을 받는다면 위 사례들은 어떻게 설명할까. 오히려 인간이 이타적 유전자를 가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아닐까. 이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이기적 유전자로는 이해되지 않는 희생과 헌신들이 수도 없이 많다.
따라서 도킨스의 주장에 난 동의 할 수 없다. 백번 양보하여 유전자는 우리에게 이기적 행동을 하도록 지시 할지 모르나 우리가 항상 그 유전자에게 복종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간혹 이기적 행동 후 마음이 불편한 것도 깊숙한 마음속엔 이타적 유전자가 자라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의 핵심은 오히려 이타적 유전자라고 난 믿는다. 공감, 연민,배려, 친절, 정의, 희생, 정직 등은 이타심이라는 씨앗에서 피어난 꽃이다. 컴패션(compassion)은 그 열매다. 컴패션은 ‘다른 사람의 고통(passion)을 자신도 함께(com) 느껴,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마음과 행동’이다. 컴패션은 다른 사람의 슬픔을 내가 슬퍼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배려하는 마음과 행동이다. 컴패션이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뿐만 아니라, 그 대상을 고통으로부터 탈출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려는 본능적인 희생이다.
우리 인류는 이미 모두 연결 되어있다. 오스트리와 소록도, 파리와 가봉, 서울역광장과 압구정동이 모두 섬세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하다. 모두가 건강해야 우리도 건강하다. 코로나 19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그들의 삶 전체를 온몸으로 느끼는 컴패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더불어 많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읽는 능력이 발달한 사람들을 많이 본다. 서울역 앞 중년남자도 그 중 한명이다.
우리 모두 ‘이타적 사고’와 ‘컴패션’을 가슴 속에 간직하면 좋겠다. 일반 시민보다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특히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도 타인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는 능력이라고 믿는다.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이타적일 필요가 있다. 한 시대를 관통해 온 102세 김형석 박사도 행복 할 수 없는 한 부류의 사람이 이기주의자라고 했다. 100년을 살아 본 체험으로 증언하는 얘기니 누가 시비 걸 수 있을까. 이기주의와 행복은 공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기주의자는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그래서 인격을 못 가집니다. 인격이 뭔가요. 그건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선한 가치입니다. 이기주의자는 그걸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인격의 크기가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입니다. 그 그릇에 행복을 담는 겁니다. 이기주의자는 그릇이 작기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를 이겨낼 궁극적인 처방전은 고통당하고 있는 이웃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자 자비의 행동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의료진,공직자, 자원봉사자들이 컴패션의 마음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보살피며 헌신하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으론 불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