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방송학과
배미경 교수
더킹핀 대표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당일 날, 목적지에 도착해 자동차 시동을 끄려던 순간 라디오방송에서 매우 익숙한 연주곡이 흘러나왔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나도 모르게 입술이 달싹거려졌다. 내리려던 차 안에 다시 몸을 주저앉히고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연주곡을 듣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8년 동안 정부가 기념식에서조차 제창을 허락하지 않아 우여곡절을 겪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영방송의 클래식 FM에서 듣다니!
미디어 콘텐츠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40주년을 맞는 올해의 5.18은 작년과 또 달랐다. 코로나 19의 엄중한 위기상황 속에서 군중집회와 대규모 행사들이 대거 취소 또는 축소되었지만, 오히려 미디어 콘텐츠는 더욱 풍성하고 다양해졌다. 5·18민주화운동의 나눔과 연대, 민주와 정의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등 진실규명에 앞장서는 적극적 보도 태도는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이 지상파방송 3사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었고, 5·18주간에는 다양한 채널에서 시사와 다큐물 등 기획방송을 내보냈다. 시청률 조사기관 TNMS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는 228만 명이 시청했다. 광주의 시청률이 21.5%로 가장 높았고, 경기?인천 10.5%, 서울 10.1%, 대구도 8.8%에 달했다. KBS특별기획 ‘임을 위한 노래’는 시청률 6.5%로 동 시간대의 ‘MBC 뉴스데스크’(6.2%), ‘SBS 8시뉴스’(5.2%)보다 높은 관심을 모았다.
더욱 놀라운 대목은 대구지역 정치인과 지역신문의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반응이다. 기념식 당일 광주를 찾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우리 당은 단 한 순간도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폄훼하거나 가벼이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당 일각에서 폄훼하고 모욕하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있었다. 이유를 막론하고 다시 한번 희생자와 유가족, 상심하셨던 모든 국민 여러분께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다”라고 발언해 광주의 환대를 받았다.
이 소식을 접한 대구지역의 유력 일간지 매일신문은 다음날 사설을 통해 주 원내대표의 발언을 적극 지지했다. “명색이 보수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광주에서 환대받은 소식이 뉴스거리가 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일일 수 있다. 이제는 그 같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통합당 지도부가 먼저 광주시민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하고 광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은 잘한 일이다”고 격려하고 나선 것이다.
올해는 40주년이란 숫자적 의미 외에도 질적 변화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40년이라는 불혹의 세월 동안 5·18은 쉬지 않고 지속 혁명을 이끌어왔다. 몇 해 전만 해도 인터넷 검색창에 ‘5·18’ 관련 키워드를 입력하면 난무하던 ‘혐오, 폄훼, 조롱’의 말도 확연히 줄었다. 5.18 당시 광주의 실상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언론의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언론들의 자기반성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광주의 5·18을 대한민국 모두의 5·18로 만들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5·18이 ‘조롱과 금기의 언어’에서 자랑스러운 ‘모두의 언어’가 될 수 있도록 미디어에서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5·18에 대한 언론의 자기반성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앞장서며 5.18의 가치를 제대로 담아내는 적극적 행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1980년 광주의 5월을 외면했던 그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채무를 갚는 일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기념사에서 한 청년의 말을 인용해 큰 울림을 주었다. “5·18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이 따로 있다면, 그것은 아직 5·18정신이 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오월정신이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5·18이 모두에게 당당한 언어가 되고 대한민국이 5.18의 가치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책무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