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사이트 아벤카지노에서 태어나 자랐을 뿐인데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남주성 학생

매년 5월이 되면 아버지는 내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군인이 집안으로 들어와 총구를 배에 들이밀고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들려주는 똑같은 이야기. 내 기억 속 첫 5·18 은 공포, 분노, 억울함이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적엔, 나 또한 공감하여 분노했던 듯하다. 그러나 매년 반복되는 이야기에 지친 것이 사실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크게 와닿지 않으며, 단지 역사적 사건의 하나로 바라보고 있다. 아버지가 전하려 했던 5·18은 내 안에서 희미해졌었다.

그러나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나에게 5·18은 떼어낼 수 없는 꼬리표였다. 타 지역 사람들과 교류하며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출신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럴 때면 자연스레 5·18에 대한 화제로 흘러가고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은 미지의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신기해하며 하나같이 동정심을 표한다. 그런가 하면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 세상 속 사람들은 대놓고 광주를 비하하고 5·18을 폭동이라며 왜곡한다. 그들은 사실에 관심 없다. 그저 괴롭힐 대상이 필요하고 즐거움을 위해 과격한 언행을 일삼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며 느껴지는 감정은 분노가 아닌 고립감이다. 대한민국 사회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 그러면서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넘기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모른체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그들과 섞이기 위해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뿐인데, 타인에게 원치 않는 시선을 받고 잘못한 것이 없는데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

과도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희생되어 왔다는 생각 또한 떨칠 수 없다. 정치인들은 선거가 다가오면 광주를 방문해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반드시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겠다”라는 말과 진실, 비극 따위의 숭고함으로 포장하여 홍보하지만 정작 선거가 끝나면 지지부진하기 십상이다.

비슷한 과정을 여러 번 지켜본 국민들은 5·18을 정치도구로 바라보며 왜곡된 사실을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동조하고 광주를 혐오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원인을 생각해 본 결과 5·18이 주는 메시지가 숭고함과 공포, 분노, 억울함 등의 지나치게 감정적인 것에 치중되어 있으며, 기억하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옅어져, 세대와 지역을 넘어선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능의 수명이 다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 이 시대는 5·18정신 계승의 위기이며, 사회가 걸어온 5·18정신 계승 작업의 문제점을 반성할 때이다. 그저 광주에서 태어나 자랐을 뿐인 청년이 사회로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상황은 분명히 잘못됐다. 동정심도 고립감도 느끼고 싶지 않다. ‘5·18정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 공직자는 이 질문에 대동(大同)의 정신이라 답했다. 무질서하고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이웃의 안위를 생각하는 따뜻함,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 청렴함. 그야말로 배워야 할 자랑스러운 역사다. 이러한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5·18의 새로운 사회적 메시지로 적합하다.

물론 그동안 전파되어 왔던 5·18민주화운동의 메시지가 폄하되어선 안될 일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기억이 옅어짐에 따라 메시지가 가진 힘이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야기된 역효과가 광주의 아들 딸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면 충분한 토론과 재고(再顧)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