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강 교수
영어학과
새 학기 수업을 준비하던 중 해묵은 자료 하나가 유독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2008년 3월 24일자 영문주간지 타임(TIME)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10가지 아이디어’라는 커버스토리가 매우 유혹적이다. 가히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일들이 우리 주변 곳곳에 일어나고 있으며, 미래를 위한 필수 정보를 정리했다고 덧붙인다.
기사는 10가지 아이디어가 돈과 정치보다도 우리가 사는 지구를 ‘지속적’으로 살리는 데 필요한 ‘비밀 에너지원’이라고 강조한다. 오늘에도 여전히 적용되는 이 생각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먼저, 공동의 부(Common Wealth)에 대한 관심이다. 국가적 이해관계는 이제 과거와는 다른 것이 되어야 하며,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해 글로벌 차원의 해결방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1세기의 절대적 도전은 비좁은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류가 공동의 운명을 공유한다는 현실에 직면하는 것, 즉 인류 공동체 운명에 대한 인식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고객 서비스업의 종말(the End of Customer Service)이다. 키오스크와 같은 셀프서비스 기술이 도입되면서 고객의 이런저런 요구에 따라 분주하게 대응해야만 했던 가게의 점원을 앞으로 현장에서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스마트 비즈니스와 AI의 진화로 더욱 가속될 것이다.
세 번째, 개봉 후 대박스타 시대(the Post-Movie-Star Era)다. 누가 스타가 될 것인지 영화 개봉 후에서야 알 수가 있다. 기존 스타가 출연했다고 블록버스터 흥행을 보장할 수가 없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 OTT 서비스 덕분에 일약 글로벌 스타로 떠오른 K-배우들이 대표적 예일 것이다.
네 번째, 역급진주의(Reverse Radicalism)다. 전직 테러리스트들을 인터뷰했던 심리학자 존 호건의 연구는 그들의 종교적 이상과 그들이 추종했던 조직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테러리스트들은 보통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비참하고 억압적인 테러단체의 생활에 실망하고 각성을 느낀다는 점에 착안하여, 종교인들과 과거에 테러리스트였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과격분자들을 이탈시키는 순화 교육프로그램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2002년 예멘에서 시작한 이 역급진주의 프로그램이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2007년에는 이집트 등 중동에서도 시행 중이다.
다섯 번째, 부엌의 화학수업(Kitchen Chemistry)이다. 부엌의 첨단과학화에 대한 소개다. 헤럴드 맥기의 ‘음식과 요리: 과학과 부엌의 전설’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감성적인 요리 기술 대신에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조리하기 위해 차갑고 어려운 과학에 대한 상식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예를 들면, 미국 농축산부(USDA)가 인증하는 고기를 웰던으로 먹기 위해서는 75도가 적절한 온도이며, 중간 정도로 익힌 미디엄은 60도이고, 덜 구워진 레어로 먹으려면 50도의 요리 온도를 준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요리를 더 쉽게 하기 위해서는 ‘터보 요리기’와 같은 부엌용 기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섯째, 지구공학(Geoengineering)의 발전이다. 자연계의 혼란이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되었지만, 역으로 이 자연계의 혼란을 더욱 부채질함으로써 지구온난화를 억제한다는 생각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첸의 이론으로 대규모의 유황 부스러기를 대기 중에 확산시켜 아지랑이 층을 만들고, 이 층이 지구를 냉각시킨다는 주장이다. 온난화와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한 구체적인 연구와 실천방법에 대한 모색과 노력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시기임을 일깨운다.
일곱째, 우아한 노년(Aging Gracefully)이다. 나이에 대한 관습적인 지혜를 버릴 것을 충고한다. 노인사회가 더 이상 문제 되지 않기 때문이다. 1970년대만 해도 지구상에 인구가 넘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 일부 선진국은 인구가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2050년경에는 선진국 노동력의 3분의 1을 50대 이상이 차지할 것으로 UN은 내다본다. 따라서 노인층의 지속적인 고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5년 정도 정년을 늘렸으며, 반연령차별법을 확대하고 있다. 게다가 노인층은 늘어난 정년을 지원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저축할 것이며, 이에 따라 상당한 구매력을 지닌 계층으로 도약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장수하는 노인들이 활기찬 에너지로 두 번째 인생을 즐기고 있다.
여덟 번째,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 치료하기다. 1960년대에 네덜란드가 막대한 천연가스를 발견하여 개발에 따른 경제호황을 누리지만, 오히려 급격한 임금상승과 함께 소비급증 등의 현상을 경험하며 경제 활력이 급격하게 저하된 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는 통화 절상에 따른 수출 경쟁력이 약화된 것은 물론 한동안 심각한 노사 갈등 등 사회불안까지 감내해야 했다. 이후 이 말은 자원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특정 부문의 경제적 활력이 경제 전체의 호황을 불러올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로 사용돼왔다. 최근 러시아의 경우 오일과 천연가스에 관련된 산업을 국유화하고 통제함으로써 자원보유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이는 자국의 산업화를 저해하고 중동의 산유국처럼 제조업의 발달이 느려지기 때문에 수입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석유나 가스 등 천연자원은 언제든 고갈되기 때문에 기본산업 토대를 육성해야함은 물론이다.
아홉째, 여성의 노동(Women‘s Work)이다. 후진국에서 여성의 사회참여, 특히 경제활동은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인도의 경우 교육받은 여성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주 지역에서는 경제적 성장력이 훨씬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무하마드 유누스에 의해 도입된 마이크로파이낸스 소액금융구제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하여 후진국 여성의 창업과 교육을 지원한다면, 가난과 기아로부터 구제할 수 있다는 실천이다.
열 번째, 올림픽을 넘어서는(Beyond the Olympics) 스포츠다. 글로벌 스포츠 게임에 대한 지속적인 TV중계가 열리는 시대가 온다. 미국의 슈퍼볼, 브라질 그랑프리, 럭비 월드컵, UEFA 챔피언십 리그 결승전, 세계육상경기는 세계인이 시청하는 5대 스포츠 경기다. 지구 곳곳에서 열리는 스포츠 경기가 안방에까지 전송 중계됨으로써 세계는 하나가 되고, 또한 큰 돈벌이가 된다.
십수년 전 기사라지만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인류의 생존법이다. 이에 반해 우리 언론은 연일 정치인의 탐욕적 불화와 비리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정치를 살리는 10가지, 아니 단 3가지 생각이라도 제발 구할 수 없을까.
그나마 미세먼지로 가뜩 흐려진 눈을 세계로 돌려보자. 한때 ‘아시아의 용’이었던 우리도 이제는 인류의 미래를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바야흐로 무엇을 먹을까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