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방송학과
김기태 교수
어렵게 문을 연 21대 정기국회 대정부 질의 장면은 한마디로 고성과 괴성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난장판 그대로다. 질의하는 의원의 주장이 맘에 들지 않으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삿대질과 함께 소리를 지른다. 일부 과격한 의원들의 입에서는 상스러운 욕설이나 비아냥도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여야의 세력 판도나 의석수 등 현실을 고려하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을 수 있으나 국민들이 보기에 볼썽사나운 국회 모습인 것 만은 분명하다.
다수당은 다수당대로 또 소수당은 소수당대로 고성과 괴성에 기대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는 전근대적인 국회 모습은 하루빨리 개혁해야 할 적폐 중 하나이다. 국회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너무 거칠어지고 있다. 특히 견해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치적 견해를 비롯하여 경제, 사회, 문화적인 모든 분야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의 내용과 표현이 지나치게 과격하고 공격적일 뿐 만 아니라 심지어는 혐오적이기 까지한 경우가 많다. 공동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대화보다는 자신의 주장 만을 일방적으로 쏟아 내거나 상대방을 비방하기 위한 격한 표현들로 우리 사회 전체가 심각하게 오염돼 가고 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확신이나 자신이 없을수록 큰소리를 내는 경향이 있다. 이치와 논리로는 상대를 설득할 수 없을 때 큰소리로 위력을 과시해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일종의 위협적 설득 기법이다. 이런 경향성을 지닌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부족하다.
대화 상대방의 입장이나 처한 상황을 고려하기 보다는 자기 중심적 사고로 매사를 처리하려 든다. 경청과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전국민의 삶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인 의제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면 찬반 양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저절로 커진다. 물리적으로 소리만 커지는게 아니라 내용도 많아지고 복잡해질 뿐 아니라 표현도 거칠어진다.
큰소리로 요란하게 떠들수록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본능이 작동한다. 차량접촉사고가 나면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몰상식과 다를 바 없다. 차분히 잘잘못을 따지고 정확하게 일처리를 하면 될 일을 우격다짐으로 해결하려는 잘못된 대화 습관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말이나 큰소리보다는 차라리 침묵이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메시지라는 말에 주목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큰 소리보다 침묵이 더 강력한 메시지인 경우가 많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침묵이 위력을 발휘한다. 거짓과 억지 그리고 혐오로 가득찬 고성이 난무할 때는 침묵이 오히려 진실이 되기 때문이다. 어릴 적 '침묵은 금이다'라는 명언은 그저 말수를 조금 줄이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자기성찰 좌우명 정도의 역할을 했다. 말이 많으면 실수하기 쉽고 남의 말을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침묵의 무게는 이런 개인 차원의 성찰 명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침묵과 함께 경청, 겸손, 공감, 나눔, 소통의 가치가 소중한 때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의 말에 귀기울이며, 조금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말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말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 중에 조금 덜어내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한 세상이다.